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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최영인
임플란트를 만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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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과의사면허고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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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약했던 소년, 치과의사가 되다
경험을 발판삼은치료계획
어릴 적부터 이가 잘 썩었어요.
그래서 가벼운 충치치료부터 임플란트까지 해볼 수 있는 치과 치료는 다 받아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치과치료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환자 분들이 어떤 부분을 아파 하시는지를 환자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치료 계획을 더 세심하게 세울 수 있게 되었죠.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치대에 가게 된 것도 아마 치과 치료 경험이 많고, 치아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요.
치대에 입학하고 나서는 이가 잘 썩는 이유가 예방 관리가 부족했던 탓이라는 걸 알았어요.그래서 제가 운영하는 치과에서는 제가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이가 아파서 오는 환자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꼭 예방치과 전문의를 병원에 배치하자 마음 먹었고, 실제로 플란치과에서 이러한 것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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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치의술에 대한 열망, 미국으로 이끌다
새로운 도전과연구의 연속
치과 면허 취득 후 공중보건의로 일하며 주말마다 학회 세미나를 다니고, 휴가 때는 미국 보스턴 국제 학회에 참석하는 등 임상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을 위한 공부도 끊임없이 지속했어요.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분들께 보탬이 되었다는 보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추후 저만의 기술을 통해 사회 공헌 활동에 보탬이 되고자 결심했습니다.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칠 때쯤 다른 친구들처럼 치과 취업을 고민했지만, 임플란트 및 선진 치과 치료 기술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던 저는 결국 마음에만 품고 있던 미국 연수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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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뤄낸 미국 치과의사면허 시험 합격
미국에서실력을 인정받다
연고도 없는 낯선 미국 땅에 홀로 살게 된 저는 대출을 받아 방 한 칸을 얻고 자동차를 렌트했어요. 방이 너무 비싸서 방 한 칸에 커튼을 치고 두 명이 사용했죠.
그리고 미국 생활은 지금 저에게 더 없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USC, UCLA, NYU 치과대학 등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미국의 선진 치의술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치과의사 면허시험까지 합격하여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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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하고, 가장 자신 있는, 진정 하고싶은 일
임플란트는 내 천직임플란트에 집중하다
귀국 후 대기업 사내 치과를 개원한 뒤에도 늘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고민은 숙제처럼 따라다녔어요.
고민을 안고 살던 어느 날,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무 불편함 없이 식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이가 좋지 않아 임플란트가 필요했던 부모님께 직접 임플란트를 해드렸던 지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참 보람차고 행복한 기분이 들자 아 내가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분야는 임플란트였지라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임플란트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부모님 임플란트 수술 전후 X-ray
BEFOREAFTER 1 YEAR실제 부모님 임플란트 수술 전후 X-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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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만족하는 임플란트 지향
초개인화 임플란트 분석ㆍ연구 도전
임플란트는 단순히 치아를 심는 일이 아닙니다. 임플란트가 필요해서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분들이시죠.
그런 분들에게 임플란트는 잃어버렸던 일상생활의 행복을 다시 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치료는 원칙적으로, 진료는 환자 중심으로라는 철학으로 개인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임플란트를 위해 지금도 자비를 들여 늘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환자분 한 분 한 분의 건강한 치아와 밝은 미소를 되찾아드리고자 노력하겠습니다.